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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차 101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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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향하여

허이삭

 


광야는 누구나의 광야

광야는 혼자만의 광야

달려도 달려도 끝나지 않을 막막함을

오래된 환승역이라고 하자

낡아버린 플랫폼이라고 하자

 


에스컬레이터 위로

저마다의 귀에 꽃힌 이어폰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견디다 못한 몇몇이 새어 나간다

누수된 물줄기마냥

계단을 탄다 종종걸음을 걷는다 쫓기듯 달린다 빨리 더 빨리

핸드폰을 힐끗거리면 열차는 시시각각 오고 있다

달리자 더 달리자 날숨 뒤에 들숨을, 또 들숨을

앞서가는 저 인파는 아무래도 가까워지지를 않는다

 


숨을 고르면

이미 비어 있는 플랫폼

아버지, 열차는 남들만을 태우고 떠났습니다

우두커니

닫혀 버린 스크린도어

 


열차가 지나간 자리로 어둠이 스며든다

여기는 뒤처진 공간

열차는 지금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겠지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열차가 자꾸만 나를 뒤로 떠밀어낸다

못 다 삼킨 과거들이 울컥울컥 역류한다

 


더 약삭빠를 걸 그랬다 이기적으로 굴 걸 그랬다 양보 같은 건 생각도 말았어야 했다 남이사 어찌 되건 치고 나갔어야 했다

애당초 이 길로 오는 게 아니었다 이따위 환승역으로 오는 게 아니었다 이 길이 가장 좋은 길일 리가 없다 안내가 고장난 것은 아닐까

편지를 너무 믿는 게 아니었다 사랑도 좋고 은혜도 좋지만 저만치 계신 아버지가 어떻게 내 삶을 책임지나 잠시 행간을 오해했었나 보다 아니 그 편지의 수신인이 내가 맞긴 했을까

 


건너편 플랫폼이 멀어지고 멀어져 범람하는 강물이 된다

스크린도어는 까마득히 높아 강둑이 되고 험산이 되고 절벽이 되고

발빠짐 주의

노란선 뒤에서 기다리시오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다

떠밀리고 떠밀려 주저앉는다

막이 내렸다

 


막이, 내렸다

정신 차려라

절벽은 어느새 암막 커튼이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전개 위기 절정 결말

그리고 언젠가의 대단원

이야기는 그렇게 쓰여지는 법이지

 


아아

요단강이 갈라지지 않아 원망했습니다

정작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계산을 잘하면 얼마나 잘했다고 숫자나 따지고 있었습니다

계획과 섭리를 싸구려 신파로 만들었습니다

 


두 손을 들자

높이 들자

나의 힘, 나의 마음, 나의 최선

이 손을 잡아주소서

위로 향하여 고개를 든다

눈을 감아도 하늘이 환하다

눈물 자국을 따라 떠오르는 빛

 


막이 오른다

열차가 떠나버린 플랫폼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

몹시 운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른손을 뻗으면 남아있는 체온이 따뜻하다

일어나자

일어나 가자

 


광야는 누구나의 광야

광야는 혼자만의 광야

달려도 달려도 끝나지 않을 먹먹함을

오래된 환승역이라고 하자

낡아버린 플랫폼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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